영화

[넷플릭스] 프로메테우스: 인류의 기원을 찾아서

sue.kim 2020. 4. 25. 23:56

- 감독: 리들리 스콧

- 각본: 데이먼 린델로프 

- 출연: 누미 라파스, 마이클 패스벤더, 샤를리즈 테론, 이드리스 엘바, 가이 피어스, 로건 마셜그린, 숀 해리스, 라프 스팰

- 개봉연도: 2012년 

- 리뷰: 

 

 


*** 아래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개인적인 감상평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실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2012년이면, 거의 8년전에 개봉한 영화 '프로메테우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걸 발견하고선 바로 해놓았던 작품이다. 

 

당시에 다양한 작품의 프리퀄 제작이 있었던 것 같다. 프로메테우스도 유명한 시리즈 '에일리언'의 프리퀄 시리즈이다. 에일리언 시리즈가 시작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보게된 인물은 바로 '데이비드'였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행동을 나쁘게 또는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 알고 보면 '데이비드'는 인간엔지니어가 만든 기술의 결과물이다. 그는 감정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당연하게 판단하지만, 과연 그런것인지 의아하게 보이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헬러웨이등 영화의 중요 인물들이 데이비드를 로봇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인류를 만든 것으로 보여지는 엔지니어들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준비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창조해 놓고 그것을 다시 파괴할 수 있느냐!'고 물은다면, 그들의 데이비드에 대한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과연 특별한 존재일까? 

 

인간이 사고하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라고들 이야기 하는데, 그렇다면 데이비드가 하는 판단은 그를 특별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단순한 사고판단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일반 성인에 비해 지능수준이 덜 발달한 어린이나 지적장애인들은 덜 중요한 존재일까? 

단계적으로 비판하고 질문해 보아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특별할 수가 없다.' 우리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그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멕시코 해변에 발광 플랑크톤이 돌아온 것만 보더라도 인간은 지구의 모든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야할 존재일뿐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샜구나.) 

 

그런면에서, 데이비드는 이 영화속 가장 특별한 존재이다. 

 

자신의 죽음도 어찌하지 못해 창조자를 찾아가 방법을 찾으려 하는 인간(데이비드의 창조자)를 위해 단순히 도구로서 이용되어지는 창조물, 데이비드.

 

헬러웨이는 2년이라는 긴 우주항해 기간동안 홀로 깨어있을 데이비드에게 고대의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들을 습득하도록 한다. 데이비드는 그동안 그가 익힐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언어를 익히게 되고, 프로메테우스호에서 오직 그만이 창조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 그의 창조자인 '인간'이 아니라. 

데이빗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데이빗은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이고, 자신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에 대한 인간의 대답은 오로지 '그럴 능력이 되니까'이다. 

그렇다면 엔지니어가 인간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만들 능력이 되기 때문에, 만들 필요가 있어서. 

하지만 인간은 엔지니어의 이런 대답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럼 다시 돌아가자. 데이비드는 이런 대답에 스스로 논리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이미 그는 창조자(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데 말이다. 

 

데이비드는 인간을 사용한 실험을 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피터 웨이랜드를 위한 실험이었지만, 자신의 창조자(인간)의 부류를 마치 실험실의 쥐처럼 실험도구로 삼는 데이비드의 욕망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엔지니어의 우주선 조종실을 발견한 데이비드의 표정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있다. 자신의 창조자, 피터 웨이필드를 거역하지 못하는 데이비드 이지만 데이비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웨이필드가 엔지니어를 만나도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를 더욱 거기로 아무란 저항없이 데려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미 자신의 삶을 거의 다 지내온 그가, 마지막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오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었을테니까 말이다. 영화의 내용처럼 엔지니어들의 원래 계획은 인류의 파멸이었고, 그것이 바로 웨이필드의 마지막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렇듯 데이비드는 인류에 복종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마냥 복종하고 있지 않다. 그 나름의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마지막 엔지니어로 인해 웨이필드가 사망하고, 데이비드도 목과 몸이 분리되어 버리지만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놓지 않은 데이비드는 쇼를 찾는다. 마치 인간의 생존본능처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포기해 가는 쇼에게 이곳을 탈출 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을 찾아오게 한다. 지구로 갈 것을 제안하지만, 엔지니어의 행성을 찾아가겠다는 쇼를 막지 않고 따라나서는 데이비드의 선택은 따라가지 않는다고 했을때 혼자 남게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을까도 싶다. 

 

창조자를 찾아나선 인간(창조자)를 찾아나선 데이비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창조자를 만난 인간(창조자)을 배신하는 데이비드.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창조자(부모)-창조물(자식)의 관계가 나타난다. 

 

엔지니어-인류

인류-로봇

쇼박사의 아버지-쇼

피터 웨이랜드 - 비커스 

쇼 - 트릴로 바이트(엔지니어의 몸에서 디컨이 태어나기 이전의 단계) 

 

이 다양한 관계를 중심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추천해 본다. 

 

 


조금 불평을 해본다면,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진중한 영화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일부 너무 흔하디 흔한 스릴러 물의 단순한 플롯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에를 들면, 파이필드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프로메테우스에 승선한 인물들은 지구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꽤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해나가는 전문가들이다. 피아필드 또한 능력인는 지질학자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엔지니어의 건축물에 도착했을 때, 불안하다는 이유로 지형을 조사하는 로봇 몇개를 날린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 이상 함께 있기도 싫다며 동료와 함께 떠났는데도 입구를 찾지 못해 밤새 건축물 안에 갇히게 된다. 그 후에 그들이 죽게되는 부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자라는 밀번은 검은 물질에서 나온 듯한 해머피드를 만났을때 무슨 강아지라도 본 것 처럼 대하는 모습은 정말 그들이 학자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항해할 만큼 큰 포부를 가지고 지구를 떠난 과학자들이라면, 과연 그들 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캐릭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부분인듯 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사건을 만들어 줄 캐릭터도 필요한 법이니까... 영화는 영화로 보며, 즐겨보길 바란다.

다음의 시리즈를 위해서도.